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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잔디밭 윤리위원회

b1u5h_J 2017. 8. 23. 22:59
키워드: 2차 창작, 불편러, nl gl bl, 공수, 리버스, 리버시블, 여공남수




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오오쿠]의 작가 요시나가 후미의 잔잔하고 경쾌한^^ 학원물 일상드라마^^ [플라워 오브 라이프]를 아십니까? 일반판으로 4권, 애장판으로 3권짜리 짧은 만화인데다 소재도 요시나가 후미 작품 중에서 무난한 편이라 추천하고 싶습니다. 재밌어요. BL만화 관심없는 분께 [더 이상 말하지 마] 같은 걸 권하지 않는 거야 당연하고, 플라워 오브 라이프는 제가 본 요시나가 작품 중에는 [사랑해야 하는 딸들] 다음으로 소재가 평범하기 때문에… 다른 작품보다 상대적으로 편한 마음으로 추천할 수 있네요.

만화 그림을 잘 그리는 주인공 하나조노 하루타로(사쿠라기 하나미치 못잖게 대박적 이름이라고 생각...)에게 같은 반 남학생이 야한 그림을 그려달라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주인공은 남학생의 어떤 요청은 바로 기각하고 또 어떤 건 괜찮다고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면 여여커플의 에로는 되는데 근친은 안된다는 식이죠. 서글서글하면서도 자기만의 선이 확실한 주인공의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작중에서 몇번 더 쓰이는데… 남자끼리의 연애는 좋지만 불륜은 안된다고도 합니다. 이것이 컷 안에서 '하나조노 윤리위원회' 라고 칭해집니다.

이 글을 쓰려니 만화 속 그 장면이 생각났기 때문에 포스트 제목이 이리 됐습니다. 하나조노花園에서 저에게 옮겨와, 잔디밭 윤리위원회ㅋㅋㅋㅋㅋㅋ



이 글은 제가 2차 창작에서 다루지 못하는 소재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이 소재를 가지고 이입해서 나의 힘으로 새 이야기를 궁리해낼 능력이 안된다'는 차원의 언급이지 '이거 지뢰다 싫다' 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창작물에 나올 때는 아 이 소재를 이런 느낌으로 쌓아올렸구나 하며 별 생각없이 보곤 합니다. 좀 더 비판적 읽기를 해야하지 않나 싶기도 한데 원작도 아닌 2차보면서 피곤해지기 싫고… 퍼져 살고 있습니다.


일단 저는 남녀 로맨스가 제일 좋긴 한데
-하지만 체구 작은 여자가 체구 큰 남자에게 일방적인 성적 혹사를 당하는 내용은 못 만듭니다. (이게 로맨스 장르의 왕도 흥행공식과 교집합이 있던데 저는 그래서 자꾸 마이너로 파고들게 되나봅니다.)
-두 사람의 계급, 능력, 지위 등이 많이 차이나는 가운데 불리한 사람이 유리한 사람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내용 못 만듭니다.

남녀를 제일 좋아하긴 하는데 남남도 좋고 여여도 좋고 소재도 웬간한 거 다 괜찮은데
-나이 차 많이 나는 커플에서 나이 많은 쪽이 우위를 잡고 지배하거나 먼저 성적인 강요를 하는 내용은 못 만듭니다. (특히 어린 쪽이 미성년이라면 더)
-가족애가 존재하는 사이에서의 3촌 내 근친간의 성애는 못만듭니다. (아마 노력해서 만들어도 허접할 것) 오빠/여동생의 근친성애는 두 캐릭터가 혈연이 있든 없든 반만 있든 뭐든 간에 못만듭니다.

남여여 여남여 남여남 남남여 지옥같은 삼각관계 전쟁같은 삼각관계 정전협정 이후같은 삼각관계 다 좋아합니다.
-하지만 삼각관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거나, 신체적 능력이 뒤처지거나, 가장 늦게 관계에 합류했거나 하는 등으로 불리함을 짊어지고 있는 캐릭터가 혼자 가장 무거운 고뇌를 떠안고 있는 이야기는 못만듭니다. 보통은 제일 조건이 좋거나 상황에 대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캐릭터가 가장 힘들어 하는 내용으로 만들곤 합니다.
(딱 보면 아시겠지만 저의 이 3인 로맨스 모델은 오덕세계에서 남녀 / 남남 / 여여 어느 진영에도 가서 비빌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남녀 로맨스 좋아하는 분들이 찬성표를 주시는 남녀남은 여1을 두고 남1과 남2가 겨루는 내용이거나 남1과 커플인 여1을 호시탐탐노리는 남2 구도가 많은데 저는 남1과 여1, 여1과 남2 못지 않게 남1과 남2 사이도 확실한 러브여야하는 그런 병입니다. 이건 바이섹슈얼보단 폴리아모리 쪽이 문제기도 하고…)


그런데 이런 얘기를 여기 남기는 게 좀 헛질같은 것이, 저는 이 나이 먹도록 이 바닥의 기본 중 기본인 공수를 모르겠거든요. /멍청
남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같이 중요하게 여기긴 하는데 본질적으로는 이해를 못하고서 대충 어~ 이 정도의~ 느낌을 말하나보다~~ 하고 있는 동안 삼백년의 세월이 흘렀다 싶은 그런 상태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이 캐릭터가 **한 수라니 미쳤어? **하고 **한 얘는 당연히 공이지!' 이런 말을 할 때… 그 기분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전달이 되도록 정리해서 쓰자면, 저는 공-수 위치보다 캐릭터 해석에 집중이 몰리는 타입입니다.

2차 창작이라는 매력적인 새 무대에 원작에서 보여준 요소들을 어떻게 절묘하게 짜넣었는지, 그래서 로맨스의 주인공인 두 캐릭터의 관계성은 어떻게 풍부해지는지 보는 게 좋아요. 물론 논커플링 창작물 경우도요.

아무튼 위와 같은 흐름에서… 제가 쓴 스가키요는 늘 스가키요인 만큼 키요스가이기도 합니다. 유희왕 유아키는 지금 떠올려보면 이건 유아키보단 아키유가 아니었나 싶은 글이 더 많았어요. 그런 식으로… 저한테 공수는 아무래도 좋고, 그보다는 캐릭터 해석이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어떤 글에서 한 커플을 '마왕과 그 오른팔' 구도로 다뤘는데 다른 분이 그 글에 대해 그건 좋은 '왕자와 마을처녀' 였다고 하신다면 저는 좀 어리둥절하겠지요.


공수가 중요하지 않은 건 니가 파는 커플링은 누가 누구한테 박느냐(…)가 변할 수 없는 남녀커플이니까 그런 거 아니냐는 말들이 왕왕 있습니다만 그러면 '삽입' 섹스를 전제로 한 육체적 성애관계를 상정하지 않고 커플링 미는 사람은 다 리버시블이냐,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공수'라는 캐해석엔 성교 시의 포지션만 달려있지 않고요. 인간은 플러그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야오이적 공-수 관계의 구도가 현실세계에서 흔히 보이는 남-녀 구도의 레플리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공수 구도에 '삽입' 섹스가 다가 아니긴 하지만 그게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삽입'섹스라고 따옴표 달아서 이 단어를 서투른 조어 취급하고 있는 제 성의를 알아주세요. 성행위의 기본이자 그 자체로 간주되고 있는 그것이 남근중심적이고 이성애 위주의 행위인건 맞잖아요. 번식은 물론이고….)
전에 어떤 유명한 디자이너가 남자들도 삽입을 경험해보고 그 부자유를 통감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들었는데 저도 기사 보고서 아, 그러고보니 그렇네, 했어요. 그 말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삽입은 아무 값도 가지고 있지 않은 행위가 아니고 분명히 It does matter 인 일이라고요.


그리고 얘기한 김에 덧붙이자면…
저는 '여공남수'라는 표현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공은 공격적-적극적-수컷-남자역이고 수는 수비적-수동적-암컷-여자역이라는 편견을 뒤집으려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 버려야 할 패러다임을 그대로 덮어쓰고 있지 않습니까? 굉장히 기만적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역 강간' '역 하렘' 수준으로. 생각해보니 '여공남수'는 '연상연하 커플' 이라는 말과 더 비슷하겠네요.


그 외에는, 제가 느끼기에 과도하게 부조리한 상황이나 불행만을 위한 불행 설정이 있겠네요. 그런 설정으로 인해 얻어지는 카타르시스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덕질하면서 스트레스 안받는 게 더 중요합니다.



맨 처음에 밝혔다시피 이 글은 창작자로서 저의 무능함에 대한 글입니다. 이 포스팅을 보고 드신 감상이나 의견 등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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