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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 카게히나
2017년 1월
-리퀘 (커플링, 소재 제공: 태자 님)
-원작 기반, 대학생이 된 시점, 연인 사이인 두 사람
-국가대표가 된 카게야마
공항이 가까운 이 거리에선 뜨고 내리는 비행기의 굉음이 몇 분에 한 번씩 뒷덜미가 오싹해지게 한다. 평소엔 놀랄 일이 있어도 크게 반응하지 않던 토비오조차 소리에 진동까지 함께 다가오는 이 자극에는 움찔하며 명백히 기분 나쁜 기색을 보였다. 하물며 앉아있는 곳은 4층짜리 빌딩의 1층 카페에 딸린 야외 테라스. 테이블에 고정된 파라솔의 하얀 대가 굉음과 함께 들들 떨려오는 것을 토비오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쇼요는 그때마다 고개를 뒤로 꺾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토비오는 내심 그 모습이 꼭 자신에게만 들리는 호각 소리에 귀를 쫑긋하는 강아지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던졌다.
주문한 음료는 순식간에 다 빨아 마시고 컵 바닥에다 요란하게 빨대 소리나 울려대던 놈에게 이런 소리를 듣다니, 별로 세울 생각도 없던 자존심이 다 상하는 기분이었다. 반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는 표시로 근엄하게 고개를 세운 쇼요는 다시 빌딩 숲 사이로 사라져가는 비행기의 꼬리로 시선을 올렸다. 지나가며 내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릴 정도로 가깝다. 비행기는 그 아랫면의 구조가 하나하나 눈에 들어올 정도로 커다랗게 보였다. 그러고 보면 비행기라는 것은 늘 위나 옆에서 본 모습으로 사진 찍히거나 그려지곤 했던 것 같다. 그런 것의 아래를 이렇게 맨눈으로 선명하게 바라보는 것이 쇼요는 꽤 신기한 기분이었다. 깊지 않은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서 항해하는 배를 올려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너, 비행기 타본 적 없던가?" 쇼요가 말을 않고 있자 이 둔한 녀석은 기어코 한 술을 더 뜬다. 쇼요는 결국 발끈해서 큰 소리로 대꾸하고 말았다. "타봤거든? 삼촌 결혼식 갈 때 타봤거든!" 정말이지, 눈치라곤 하나도 없는 연인이다. 몇 번이고 오가는 비행기 소리를 들으며 시계를 흘끗대다 보니, 쇼요는 비행기가 대충 얼마 간격으로 머리 위를 지나쳐가는지 알게 되었다. 낮게 나는 비행기의 바닥을 몇 번째로 올려보는지를 세려 하지 않아도 머리는 저절로 기억한다. 그러면 또 어느샌가 원치 않는 곱하기가 이루어지고,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버리고 만다… 두 사람이 만난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카게야마 토비오가 비행시간에 늦지 않게 일어나야만 하는 시각까지는 또 얼마나 남았는지, 안 그래도 얼마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이 마주 앉은 이 자리에서 얼마나 줄어들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쇼요가 토비오를 공항까지 바래다주는 것인지, 토비오가 공항까지 가는 길에 쇼요를 만나러 시간을 낸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자리는 이 낯선 도회의 거리에서 각자 한 잔씩 시킨 음료를 다 마시고, 일어나면, 끝이다. 그러고 나면 카게야마 토비오는 전일본대표 남자배구팀의 세터로서 일본을 떠나고, 히나타 쇼요는
…이곳에 남아, 계절학기 수업을 듣는다. 토비오가 단번에 비워버린 음료는 단맛도 나지않는 차가운 민트라임주스였다. 토비오가 주문을 말할 때부터 쇼요의 입 안에는, 국가대표께선 벌써부터 칼로리 관리에 들어가신 거냐는 비꼬는 말이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쇼요는 그 말들을 혀 위에서 깨끗이 치우지도 못하고, 시원히 뱉어버리지도 못한 채로 자기가 시킨 잔의 받침만 손끝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쪽은 무슨 맛인지 짐작도 안가는 이름이 어려운 뜨거운 커피다. 컵 가장자리에 입만 겨우 댄 후 그대로 식어가는 그 한잔의 의미를, 토비오는 모른다. 이 벽창호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쇼요에게 "2월에 삿포로에 갔던 일 말하는 거야?"하고 태연하게 말을 받을 뿐이다. "역시 넌 우리 삼촌이랑 닮았어." 쇼요는 도끼눈을 뜨며 그렇게 말했다. 삿포로에 사는 토시키 삼촌은 쇼요 어머니의 사촌 동생으로, 이학박사였다. 친척 가운데 가장 학력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연고도 없는 삿포로에 자리를 잡게 된 것도 홋카이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무슨 국책사업에서 한 자리를 맡은 때문이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인재라고 한다. 그치만 그게 어떤 분야였는지 쇼요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지질학이었던가? 어른들이 칭찬하는 어릴 때부터의 대단한 이력들과는 별개로 가끔 만나는 쇼요에게, 또 와 쇼요의 어린 동생 나츠에게, 토시키 삼촌은 최고의 놀이 상대이자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였다. 지금 눈앞에서 함께 웃는 삼촌의 다정한 모습 이외의 것들은, 아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토시키 삼촌이 몇 달 전 결혼을 했다. 대학생 아들을 둔 쇼요 어머니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사람의 초혼이니 늦었다 할 만하지만,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어머니는 별로 그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말했다. "토시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고 키도 컸지만, 엄마 생각에 그 앤 오히려 성장이 느린 편이 아니었나 해."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쇼요는 알아차린 건지 아닌 건지, 어머니는 여동생 나츠를 상대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토시는 아기 때부터 또래보다 체격도 크고, 성적도 좋았다. 겨울에 태어나 동급생들에 비해 생일이 늦은 편인데도 몇 살 위인 쇼요 어머니보다도 오빠라고 오해받은 적이 많았다고 했다. 키와 몸무게와 시험 점수. 수치로 평가받는 토시는 분명 또래 절대다수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그 우수한 수치 그대로도 '통했기' 때문에 토시는 다른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토시키 삼촌에 대한 어머니의 평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고등학생이 돼서야 중학생처럼 떠들었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고등학생처럼 놀게 됐지. 그 앤 좀 느려. 걔한텐 그게 제 속도인 거야." 쇼요는 그 얘기가 자신이 잘 아는 누군가에게도 꼭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뛰어났던 능력(체격을 포함해서), 자신의 흥미 분야에 열중할 뿐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던 아이, 그래서 오히려 어떤 면에선 나이에 비해 뒤처진 아이.
그러는 쇼요 자신도 그렇게 성숙한 타입은 아니다. 차분하지 못하고 어린아이같이 군다는 자각은 갖고 있다. 체격도 작고, 어려 보이는 얼굴은 집안 내력이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 물정이나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는 데는 카게야마보단, 토비오보다는 낫다고 자부한다. 둘 사이엔 적어도 저 맹탕주스와 커피만큼의 차이는 존재한다고. "전에도 너한테 그 비슷한 말을 들었던 거 같은데." 쇼요도 토비오가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러고 보면 '그 사람'도 좀 그런 타입이 아닌가 싶다. "아, 그래. 나도 기억나. …우시지마 선배는 잘 있냐?"
"나도 지금 공항에 가야 만날 테니, 모르지." 국가대표끼리 친목이나 다져보시지? 하는, 결국은 참지 못한 약간의 비꼼을 담은 쇼요의 질문에도 토비오는 뒤숭숭한 속셈 하나 섞지 않고 진지하게 답해 온다. '아. 졌다.' 역시 귀엽다. 연인은 사랑스럽다. 쇼요는 한숨처럼 웃으며 표정을 풀 수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대화의 흐름이나 좌중의 분위기에 둔감했던 토비오가, 쇼요와 정식으로 사귀게 된 후 쇼요에 대해서만은 많이 의식하고 사소한 것도 기억해내곤 했다. 쇼요 여동생의 생일선물을 챙긴다거나 이전에 쇼요가 멋지다고 했던 게임기 이야기를 먼저 화제 삼거나 하는 식으로. 배구밖에 모르고 배구밖에 관심이 없던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가끔 목이 마른 듯한 표정으로 쇼요의 목덜미나 입술을 내려볼 때는 짜릿하기까지 했다. '좋아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던 토비오에게 하고 싶은 일이나 해도 되는 일들을 하나하나 알려줘 온 그간의 세월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사소한 신호에도 몸과 마음이 들뜬다. 아니, 이것저것 잴 것도 없다.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다….
괜한 입씨름을 하는 사이 또 십 여분이 지났는지, 또다시 등 뒤에서부터 비행기 굉음이 파도처럼 다가왔다. 그림자가 쇼요의 머리 위를 타고 올랐다. 남은 그림자 자락이 소음의 진동 탓에 굳어진 토비오의 얼굴로 드리워진다. 연한 어둠이 주변을 남김없이 감싸, 표정이 단순한 잘생긴 얼굴에 요철도 고저도 깊이도 없애버렸다. '아, 그거다.'
罔兩問景曰
망량이 그림자에게 물었다. 그것이 첫 구절이었다.
수강만 하면 학점은 후하게 받을 수 있다는 친구들의 말에 덜컥 신청한 계절학기 교양 수업이었다. 이어지는 '그림자'와 '그 가장자리의 더 옅은 그림자'의 대화는 쇼요에겐 통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역시 첫 시간에 들은 대로 동양철학의 길이란 그것이 무엇이라고 잘라 말하는 순간 이미 그 정체를 잃게 되는 것인가. 길 잃은 깨달음을 갖게 된 쇼요였지만, 그 한 구절만은 인상깊게 가슴에 남았다. 카게야마影山와 히나타日向, 그렇게 묶여 불린 뒤로, 그리고 쇼요 자신이 토비오와 묶여지고 싶어진 뒤로, 쇼요는 모든 것에서 자신과 토비오를 찾아낼 수 있게 됐다. 한낮, 양달에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그 경계에 생기는 빛이라고도 그림자라고도 확실히 말하기 힘든 중간의 구역, 더 연한 그림자. 그것을 굳이 집어서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가 있다. 수 천 년 전 어떤 사람이 먼저 그렇게 했었다.
쇼요는 처음으로 알았다.
'망량.'
카게야마를 좋아하게 된 후 히나타 쇼요의 안에는 이렇다저렇다 확실히 잘라 말할 수 없는 이상한 일렁임이 생겨났다. 그것은 카게야마를 처음 만났을 때나 팀메이트가 되었을 때의 동요나 성취감과는 다른 것이었다. 훨씬 더 아프고, 살갗에 스친 불꽃처럼 따끔하게 뜨겁고, 불길하게 뭉쳐져 엉겨 있는 것. 두근거림, 설렘, 불안, 애틋함, 그 어느 기분이라고도 설명할 수 없는.
듣고 접하는 모든 것을 카게야마 토비오와 연결해 생각하게 하고, 가장 산뜻한 기쁨과 가장 깊은 비참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것.
그리고 교수의 말을 절반도 이해할 수 없었던 수업에서, 그 알 수 없는 일렁임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쇼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토비오." 한낮이라 그림자는 아직 짧았고, 안 그래도 쇼요의 그림자는 원래도 좀 짧다. 토비오의 얼굴에 드리운 비행기 그림자는 그것을 지우고자 쇼요가 의도했던 바보다는 몇 초 느리게 걷혔다. "왜." 마주 보고 앉았던 쇼요가 토비오가 앉은 자리의 바로 오른쪽 의자로 옮겨앉자 토비오는 의아한 시선을 던진다.
속셈 없고, 단순한, 그래서 신뢰가 가는 곧은 눈길. 쇼요는 옆자리의 토비오를 향해 고개를 조금 든 채 "음." 하고 입술을 조금 내밀곤, 눈을 감았다. "뭐, 뭐하는 거야?" 명백히 입맞춤을 기다리는 몸짓에 토비오는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쇼요는 간단하게 말했다. "키스하자."
"여…기서?" 달아오른 얼굴로 딱딱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토비오의 얼굴이 눈을 감고 있어도 목소리로 다 보였다.
'그래도 좋아죽는 거 다 알거든?'
"너 이번에 갔다 오면 이제 얼굴 다 팔려서 우린 밖에서 뽀뽀 한 번 못하게 될 거야.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대회잖아. 그러니까,"
애인보다 몸의 연령은 반년, 정신연령은 그 이상 위인 사람으로서, 쇼요는 어른의 여유를 가지고 씨익 웃었다. 토비오와는 달리 쇼요에겐 속에 든 셈이라는 게 있었다. 지금은 쇼요에게 홀딱 반해 제 깜냥에 차지 않는 일이라도 이것저것 다 하고 싶어 하지만, 카게야마 토비오란 결국엔 배구밖에 없는 녀석이라는 걸 쇼요는 알았다.그러면 연인 쇼요가 아닌 플레이어 히나타 쇼요로서 끝까지 가면 된다.
카게야마 토비오의 신들린 셋업이 아니면 히나타 쇼요는 활약할 수 없다는 말을 고교시절부터 질리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역으로, 히나타 쇼요란 선수를 활약시키는 것이야말로 카게야마 토비오에겐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는 가장 짜릿한 플레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
아마 토비오조차도 아직은 모를 테지. 애인인 토비오와 어디까지고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 이상으로, 배구선수 히나타 쇼요로서의 프라이드가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니까, 다음 대회 때는 둘 다 나가게 될 거야.'
전 세계 생중계. "그 전에 조금이라도 많이 해두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감은 눈 앞으로 토비오의 그림자가 덮여왔다. 부드럽게 닿아오는 입술과 함께 톡 쏘는 상큼한 향이 감각을 가득 채웠다.
…토비오가 잘 골랐다. 앞으론 음료 시키는 것 정도로 혼자 꽁해있지 말아야겠다고 쇼요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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